용케 기회가 닿아 취미삼아 옹기를 배우러 다니던 때가 벌써 재작년입니다.
무게 하나 없는 것을 다루 듯 흙을 놀리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언제나처럼 자기 것 먼저 봐달라는 성마른 학생들에 이끌려 물레를 넘나드시다가
지나는 말로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를 읊어 권하신 적이 있습니다.
흙 다루는 일에 대한 묘사가 당신 보시기에도 거슬리지 않으셨나 싶어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비슷하게, 차를 깊게 이해하고 다룬 우리 이야기는 없을까하는 궁금증도 들었지요.
글과 말의 예술가들이 그려내는 차와 사람들을 읽으면
그 소리를 빌어 더 우아하고 풍부한 표현을 할 수 있을텐데,
뜻밖의 시각으로 전혀 다른 것을 보는 눈에 의지할 수도 있을텐데, 하는 기대와 함께 말이죠.
차에 대해 말하려면 대부분 무언가에 빗대어 설명할 수 밖에 없는데
항상 표현할 말을 찾는데 답답함을 느끼니까요.
다른 시간을 보낸 상대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싶은 불안도 있고 말입니다.
물론 서로 공통된 말을 찾는 것이 함께 있는 시간을 유연하게 해주기도 하지만요.
문학작품을 공유하다보면 눈 찡긋 통하는 우리만의 암호를 가질 수 있을텐데요.
우리 차문화의 박한 토양을 탓하고 싶다가 공부가 부족한 나에게 화살을 돌리며 아직도 그런 작품을 찾고 있습니다.
추천해 주시면 감사한 마음에 차라도 한통 안겨드리고 싶습니다.
아쉽고 부럽지만 먼나라와 이웃나라의 책을 먼저 만나고 있습니다.
1. <예술가로 산다는 것> 마쓰모토 세이초
무심코 목차를 살피다 ‘센리큐’가 눈에 띄어 집어들었습니다.
조불사(불상을 만드는 사람), 화가, 서예가, 센리큐와 몇몇 다도인 등 일본의 예술가들을 다룬 역사소설입니다.
질투하고, 대립하고, 휩쓸리고, 고뇌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예술을, 세계를 이뤄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차를 공부하면서 여기서 저기서 몇 줄이나마 읽어넘겼기에 귀에 익었지만 뚜렷한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작가가 주의를 주었듯 역사적 인물을 ‘복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해석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이 있겠지요.
하지만 더 깊이 공부하기 전에 인물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을 새기기에 이야기의 형식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까 싶습니다.
더 많은 지료를 찾아서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을테죠.
일본의 티세레머니를 보고 있으면 꼭 저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어 눈이 가늘어지다가
문득 저 사람들은 지극히 작은 것에서 우주를 찾는건가 싶어서 압도된 적이 있었지요.
그 모든 형식들에 깃든 정신을 이 책을 통해 겉핥기나마 이해할 수 있을 듯 했습니다.
말로 풀어주어야 그 뜻을 알아먹는 스타일이라 말이죠.
2. <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차를 주제로 다룬 소설도 아니고 그런 기대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몇 장 넘기지도 않아서 불쑥 이런 문장이 품에 안깁니다.
‘기억의 폭탄이 잔잔한 홍찻빛 마음에 폭격을 가하듯 홍찻빛 고요한 물구덩이에 세찬 비가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모든 것에 깃들인 그들의 신처럼 피부 깊숙하게 찻물을 들인 그 정서에 둘러쌓인 시간 안에 있기가 좋았다가,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단번에 이룬 것 같은 잘 짜인 아름다운 이야기가 더 좋아져서,
‘티벡에서 우러난 차처럼’ 스며들어서,
정말 좋아하는 한 권의 책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이 새로운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공감적인 직관, 혹은 감정이입이다.
그것은 문제 속으로 들어가서 그 문제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이라는데
가장 근접한 방법으로 인도를 여행한다손 치더라도 방문자, 관찰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이 책 한권의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싶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때와 모든 곳에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작은 책들은 언제나 나보다 크지요’
겨울, 따뜻한 차 한 잔 곁에 두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